출퇴근 시간이 되면 피로를 안고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피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성과사회의 피로함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다양한 철학적 논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본래 독일어로 쓰인 것을 번역한 책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피로사회>는 '피로사회' 본 내용과 '우울사회'라는 강의록의 두 가지로 분리되어 있다. 뒤에 실린 '우울사회'는 궁극적으로 '피로사회'와 주제의식이 같고 겹치는 내용이 많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앞에 실린 '피로사회'를 읽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굉장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각 시대를 병리학적으로 비유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이질성과 타자성이 소멸하면서 면역학적 시대가 신경증적 시대로 변모했다고 설명한다. 시대를 지배한 발병 매커니즘이 외부에서 바이러스나 균이 침입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타자의 부정성'에서 최근 들어 면역학적 질병보다 더 문제시되는 비만이나 암세포의 증식 같은 이상 과잉 증상의 '긍정성의 과잉'으로 옮겨갔다고 보고,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간 긍정성의 과잉, 포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많았지만, 병리학적 비유를 든 것은 참신하게 와닿았다. 마치 비만이 면역반응은 일으키지 않는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몸 군데군데 해로운 영향을 몰고 오는 것처럼, 긍정성의 과잉은 '내재성의 테러'를 가지고 온다.
현재 많은 것들이 포화 상태에 있지만, 하나를 뽑자면 당연 '인구 포화'일 것이다. 인구 포화로 인해 사회경제적 전반으로 혼란이 가속되고 환경 문제도 심각해졌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등장한 빌런 '타노스'는 인구 포화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 생명의 절반을 없애버리려고 했고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속 악당 '발렌타인'도 같은 이유로 세계 인구를 줄이고자 했다. 영화 속 악당들의 방법은 극단적이기는 하나 포화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고 중요하게 다뤄져야 함을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면역학적 시대와 신경증적 시대는 각각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로 근사할 수 있다. 당위만큼 능력도 중시되는 성과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성과를 향한 압박을 느끼게 한다. 보장된 자유 속에서 가해지는 압박감은 빈번하게 우울증과 자기착취를 낳곤 한다.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게 되는 자기착취는 우울증 못지않게 사회에 악영향을 가져온다.
성과사회로의 변모는 노동자에서 휴식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서로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자유시간에도 일을 하게 만들었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법은 이러 자기착취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국가는 성과사회에 걸맞게 국민에게 노동의 자유를 부여해야겠지만 자기착취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성과를 위한 왜곡된 자유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가질 수 있게끔 말이다.
멀티태스킹으로도 대표되는 과잉주의는 우리에게서 깊은 사색을 앗아갔다. 사색이 없어지고 있는 우리를 향해 한 교수는 진화가 아니라 도리어 퇴화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니체의 '중단하는 본능'과도 연관되며 긍정성의 과잉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단의 부정성을 내쫓아버렸다.
앞으로만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이 막다른 길일지 잘못된 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멈추고 방향 전환을 하려면 '중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단의 부정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피로사회' 속에 살면서 긍정성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부정성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긍정성과 부정성이라는 양극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사회에 던져진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교수는 '피로사회'의 끝에서 우리 사회가 이제는 성과사회를 넘어 도핑사회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도핑사회의 특징은 성능 없는 성과이다.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문제의 본질은 놓치고 피로해지기만 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확실히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다. 피로사회의 과잉주의로 중단의 부정성과 함께 잃어버린 것은 분노이다. 우리는 분노하는 법을 되찾아야 한다. 분노로 모순된 것들을 허물어트려 과잉된 긍정성을 몰아내고 부정성을 키워 균형을 찾아야 한다. 분노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답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망가져가는 사회 속에서 바르게 나아가고자 하는 작은 발버둥, 그 원동력으로 분노가 필요함은 외치고 싶다. 성과사회가 도핑사회로 완전히 변하기 전에 발버둥 정도는 쳐봐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문헌
한병철. (2012). 피로사회. (김태환, 역). 문학과 지성사. (원본 출판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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