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책

[書說] 모멸감 (김찬호 作)

천사환 2022. 2. 27.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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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책의 뒤표지에 있는 모멸감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이 감정에 대해 책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김찬호 교수의 <모멸감>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멸감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책머리에서 선행연구의 부재 탓에 책의 저술에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도구로 '모멸감'에 대한 토대를 잘 깔아 둔 것 같다. 

 

책은 모멸감을 우선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진단·처방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의의 과정에서 '수치심-모욕감-모멸감'의 비교를 통해 모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이것이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음을 느끼게 되어 책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남들을 열등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한다. 자기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사람들과의 선 긋기를 통해 스스로의 잘남을 확인하려고 한다. (90p)"

 

김 교수의 표현을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오지랖 부리며 괜히 타인의 심기를 건드리기를 좋아하지만 역으로 당하면 피해의식과 열등감의 폭발로 노발대발하는 존재이다. 극단적인 성향의 커뮤니티와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보면 마냥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구시대적인 프레임 정치와 편 가르기가 아직도 먹히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실의 가운데 있는 것이 모멸의 감정이고 시대가 발전해도 모멸에 관한 그릇된 행태는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모멸감>에서 진단하고 있는 문제가 한국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리기 어렵다. 세계 전체가 '혐오 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건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비교언어학적으로 한국어는 긍정적인 어휘보다는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다. 이런 상태에서 식민지배를 통해 급속도의 근대화를 겪은 것이 모멸의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연봉을 받느냐, 소비시장에서 얼마만큼의 구매력을 갖느냐가 행복의 기준으로 절대화되어간다. 교육열이라는 것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러한 일원적인 가치를 향한 경쟁에 다름 아니다. 아이에서 청년에 이르기까지, 장차 '천한' 존재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118p)" 

 

현대사회가 모멸의 감정에 휩싸인 것에는 갑자기 침투한 자본주의에 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안착하지 못한 탓도 있다. 관직으로 대표되던 귀천의 문제가 자본주의와 결탁해 귀와 천을 부와 민으로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부를 위해서 자존심도 던지고 소위 말하는 '갑질'에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마음의 상처는 점점 커져가고 사회도 썩어간다. 이분법적으로는 부자들의 기득권 의식과 서민들의 피해의식은 심회 되어만 간다.

 

"한국의 근대화는 선진 산업사회를 재빨리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긴박하게 추진되었다. 그러다 보니 합리적 개인화를 수반하지 못한 채 집단 에너지를 동원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공동체는 빠르게 해체되었지만, 대안적인 공동체나 자발적인 결사체의 형성은 지극히 미미했다. 결국 개인의 독립도 사회적 유대도 모두 엉성한 채 외형적인 경제 규모만 커졌다. (142p)" 

 

대한민국이 이룬 급속도의 근대화가 곳곳에 부작용을 가지고 왔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실현에 대한 가치관만 봐도 정신적 성장과 국가의 외형적 성장이 비례하지 않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공동체의 붕괴에 비해 개인주의의 형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존중은커녕 오히려 무시하는 식으로 개인주의의 본질이 훼손되었고, 괜히 간섭해 사이만 나빠지는 공동체 사회의 잔재도 남아 역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모멸감'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다분히 많은 사회현상을 진단할 수 있음은 놀라운 사실이다. 철학에서는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책에서는 뒤로 모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하고 있다. 정성적이고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아 마무리에 아쉬움이 있지만, 전반부에서 모멸감을 정의·진단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의가 있는 책이다. 품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개인적 차원의 고민이 더해져 모멸의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이 혐오 사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감정에 주목해서 사회에 접근하고자 하는 감정사회학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면 좋겠고, 우리 사회가 그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면 좋겠다. 

 

 
모멸감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은 ‘모멸감’을 키워드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조명하면서 한국인의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한 책이다. 모멸감은 ‘모멸스러운 느낌’을 의미하는데, 이때 ‘모멸’은 ‘업신여기고 얕잡아봄’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모멸감은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으로, 이 단어는 비단 뉴스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일상의 문법을 연구해온 사회학자 김찬호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모멸감의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모욕을 주고받는지, 크고 작은 모욕이 이어지는 데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 또 모멸감을 극복하는 힘은 어디에 있으며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감정’의 차원에서 조망하고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보탬이 되어준다.
저자
김찬호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2014.03.01

참고문헌

김찬호. (2015). 모멸감.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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