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책

[書說]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이기주 作)

천사환 2022. 3. 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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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감성의 무의미한 책들이 판을 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자기계발서·에세이를 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기주 작가의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읽으면서 에세이의 힘과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몇 해가 지나도록 서점에서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구절을 인용하며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누구나 있다
가슴 깊이 파고들어 지지 않는 꽃이 된 문장이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주는 그 무엇이 (21p)"

 

에세이가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나 싶다. 작가의 문장이 홀씨가 되어 날아가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채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만드니 말이다. 나도 한동안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사진으로 찍기도 하고 공책에 베껴적기도 하곤 했는데, 대입 준비를 하고 정신없이 살면서 그런 나만의 낭만을 잃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 <한때 소중했던 것들>의 의미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한때만' 소중했던 것이 아니라 '한때' 소중했지만 지금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린 것들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생각할 기회가 주어져 좋았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의 대부분은 추억 속에 숨 쉬고 있지만, 현실에 치이면서 그것을 다시 끄집어낼 용기와 힘이 부족해 남겨두고 있지 않나 싶다. 

 

"타인이 내 망치로 내 가슴팍에 때려박은 못을 발견하면 피를 철철
흘리더라도 스스로 못대가리를 잡아당겨서 빼내는 일,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야말로 세월을 견디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63p)"

 

표현이 참 격정적이면서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는다. 작은 생치기도 있지만 진짜 못을 때려 박은 듯한 아픔도 있다. 소싯적에 나도 참 상처를 많이 입었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조금 무뎌져 흘려보내는 일도 많아졌다. 요점은 가슴에 박힌 못을 빼는 것은 본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 마무리는 본인이 지어야 한다. 이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흉터가 적게 남도록 못을 빼는 자신만의 방법을 깨우치는 것이 아닐까? 

 

"내 시간과 상대의 시간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낼 때
사랑이라는 옷감이 완성된다 (99p)"

 

이기주 작가는 어머니를 굉장히 사랑하는 것 같다. 남녀 간의 사랑보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눈에 띄게 자주 말한다. 위 문장은 그런 바탕에 있는 작가의 사랑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서로의 시간이 엮어져 사랑이라는 옷감이 완성된다고 했다. 그에 가장 부합하는 이들은 바로 가족이겠다. 사랑을 너무 좁게만 볼 필요는 없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사랑의 대상이고, 소중한 인연들이 쉽게 끊어지지 않도록 사랑도 배워야 한다. 

 

"누군가 내게 이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호칭이 소멸되는 일인 것 같아요"하고 답하겠다. 서로의 입술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우린 누군가와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덧없이,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197p)"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일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이별의 순간이 오면 서로의 호칭은 사라지고 이름을 부르는 느낌부터 달라지지 않나 싶다. 혹은 '그 사람' 따위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를 안 좋게 볼 때 '아무개'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아무튼 호칭의 소멸은 물리적 이별이 아니라 정신적 이별을 뜻하며 관계의 종지부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꺼내기 힘든 이들도 그만큼 한때 소중하지 않았나? 

 

이처럼 이기주 작가의 글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하니씩 일깨워준다. 당연한 말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작가의 글솜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덧붙여 여운이 남도록 하는 행갈이도 인상 깊었다. 끝으로 에필로그에 있는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그리하여 당신의 눈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햇볕이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에 햇살이 어른거리지 않으면
우린 언제나 겨울이다. (241p)"

 

 

 
한때 소중했던 것들(빛 에디션)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만의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일이다 때론 어둠 속을 걸으면서 손끝으로 어둠을 매만져야 한다 그런 뒤에야 우린 빛으로 향하는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어둠을 직시할 때만 빛을 움켜쥘 수 있다 우리 삶 곳곳에 스미는 빛, 분명히 있었던 ‘한때 소중했던’ 순간의 발견 『한때 소중했던 것들』 빛 에디션 출간 이기주 작가의 산문집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 ‘빛 에디션’은 이기주 작가가 꾸준히 발견해온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 찬란한 순간을 다시 한번 포착해낸다. 빛은 우리가 환하게 행복한 순간에도, 한 치 앞도 모르는 막막한 불안과 어둠을 지날 때도 크고 작은 형태로 존재하며 우리의 삶에 등대가 되어준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 빛 에디션은 이 빛나는 순간 즉, “한때 소중했던 것”을 발견하는 연장선에 있다. 낮이 지나가고 밤이 오는 사이 하늘의 오묘한 경계, 정제된 개인의 공간에 불현듯 벽면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의 안온함, 어느 오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벽면을 비추던 빛의 장면들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반짝이는 삶의 특별한 순간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약간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기주 작가가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장으로 빚어내는 책 속 장면들은 문장에서 문장으로, 행간에서 행간으로 이어지며 끝내 독자의 마음에 가닿는다. 삶 속 장면을 건져 올려 활자화한 이야기가 묵직한 감동과 울림이 되어, 다시 우리의 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저자
이기주
출판
출판일
2018.07.09

참고문헌

이기주. (2018). 한때 소중했던 것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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