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책

[書說] 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作)

천사환 2021. 7. 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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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의 딸, 책장을 살펴보다가 표지와 '아가멤논'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읽었는데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뛰어난 작가를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작가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알바니아'라는 국가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게는 알바니아에 대한 무지는 다행히 책을 읽는데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았다. 책의 내용이 비단 한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아가멤논의 딸>의 앞부분에는 이 책이 쓰였을 당시의 배경과 작가의 상황을 일부 전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줄거리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사회주의 국가에 살아가던 '나'가 5월 1일 노동절 기념 대회장에 초대받아 정해진 시간에 길을 따라 배치된 좌석을 찾아가는 것뿐이다. 당 간부의 '딸'과 결별한 '나'는 이 짧은 여정에서 개인적 비극을 신화적 차원으로 확대하며 이해하고자 한다. 대회장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다양한 인물 군상과 상황을 통해 그는 나름대로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통행증을 가지고 목적지를 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로드무비의 형식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기보다 오히려 몰락과 타락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작가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이용해서 개인의 주관을 전달함과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의 상황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화를 결합하고 있다. 신화는 지금까지 많은 소설의 모티프가 되어왔지만,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방식은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책을 보면서 참 생각해볼거리가 많았는데 그 中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두 가지 메타포만 전달해볼까 한다. 첫 번째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의 이야기이다. 나는 아가멤논을 그냥 트로이 전쟁에 참였던 한 명의 장수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폭풍우를 잠재우기 참전하기 위한 제물로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칼카스의 조언이 있었다고 해도 왜 하필 지휘관인 아가멤논이 제물로 이피게네이아를 골랐는지는 꽤나 의아한 대목이다. 전쟁을 위한 전체주의적 희생물이었을까? '나'는 그런 의문점에서 출발해 '수잔나'도 당 간부인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주어진 자유를 희생해야만 했다는 추측에 도달한다. 작가가 쓴 속편 <후계자>에 수잔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추후에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아무튼 이피게네이아와 수잔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생'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가지게끔 한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희생'을 마주할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희생이라는 고결한 행동에 가려져 실체적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냐는 것이다. 이피게네이아가 죽음으로써 전쟁에 대한 관심만 고취되었지 그녀가 실제로 죽은 것인지 왜 죽어야 했는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우리는 희생이 이루어질 때 그것이 진실로 필요한 것인지 꼭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대머리의 추락'이라는 전설이다. '대머리의 추락'은 골짜기로 추락한 대머리가 다시 위로 올라오기 위해서 독수리의 힘을 빌린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 독수리는 날아오르기 위해서 날고기를 먹어야만 한다. 결국 위로 올라온 대머리는 자신의 살을 모두 독수리에게 먹혀 해골뿐이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어느 세상에서든 추락하고 다시 위로 올라오는 것은 힘들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성공을 향하여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다. 모두가 독수리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을 수 있다. 나는 맨손으로 절벽을 올라 꼭대기에 도착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어떻게 오르고 있는가', 혹여나 '독수리를 타기 위해서 자신의 살을 또 타인의 살을 파먹이고 있지는 않는가' 멈춰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책 속의 '나'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을 고자질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모습에서 떠올려냈다. 그런데 책 속 사회주의에서 벌어지는 그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의 상황은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계로 인식된다. 그런데 그 세계를 지적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쓴 책에서 우리 사회가 보이는 이유, 공감가는 내용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체재를 넘어서는 인간 본연의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서로 간의 싸움을 조장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기득권 세력, 타인의 것을 추악한 방법으로 탐하며 위로 오르고자 하는 간악한 무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이피게네이아 이야기와 '대머리의 추락'이 각각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책에는 내가 전한 두 가지 말고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다른 메타포들이 숨겨져 있으니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가멤논의 딸(양장본 HardCover)
〈부서진 사월〉, 〈꿈의 궁전〉으로 잘 알려진,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 소설. 이 작품은 5월 1일 노동절 기념 대회 날 몇 시간 동안의 일을 담아낸다. 대회장 가는 길에서 '나'가 만나는 사람들, '나'가 회상하는 사건을 통해 혹독한 전제정권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그리고 권력의 공포 앞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변질되고 몰락해가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회 날 아침, '나'는 국가의 선택을 받은 인민만이 입장할 수 있는 대회장 초대권을 가지고 아파트에서 연인 수잔나를 기다린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수잔나의 아버지는 지도자 동지의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고위 간부로, 그녀는 아버지의 승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에게 이별을 통고한 것이다. 오지 않던 그녀를 기다리던 나는 결국 대회장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국가의 간택을 받을 만한 영웅이 아니었던 '나'는 대회장 가는 길 내내 죄의식과 피해의식에 빠져, 비난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군중에 맞서 공격적이 되어간다. 그리고 대회장 가는 길에 '나'가 만나는 사람들은 국가의 억압을 겪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들이다. 〈양장본〉
저자
이스마일 카다레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07.11.05

참고문헌 

이스마일 카다레. (2007). 아가멤논의 딸. (우종길, 역). 문학동네. (원본 출판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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