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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16

[詩說] 이문재의 <사막>

사막 이문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사막'은 흔히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척박한 땅으로 생각된다. 나는 그런 불모의 땅인 사막에서 모래알들이 가지고 있을 연대감을 떠올렸다. 모래알들은 각자가 외롭지 않을 만큼 가까지만 또 서로 너무 간섭하지 않도록 거리를 둔다. 생명은 허락하지 않는 퇴약볕을 견디며 굳건히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가 그 '사이'일지도 모른다. 우리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래'를 '인간'으로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사회에서는 무수한 인간관계들이 형성되고 각각의 관계 속에서 적당한 '사이'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것이..

인문/시 2021.12.14

[詩說] 윤동주의 <새로운 길>

새로운 길 윤동주 내로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너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우리는 살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종종 갈망한다. 일상 속 별거 아닌 일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여 설레고 행복해질 때도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반복되는 생활 속에 정해진 일과 외의 것을 많이 놓치고 있다. 윤동주의 을 읽으며 그래도 가끔은 주위를 살피며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가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사실 이 시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새로움으로 인한 설렘보다는 그렇지 않기에 찾아오는 서글픔이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말하며 당차게 걸어 나가지..

인문/시 2021.11.07

[書說] 장미와 주목 (아가사 크리스티 作)

흔히들 '아가사 크리스티'를 추리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지 생각하고 을 들었다가 내 정서랑 맞지 않아 중간에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매력적인 표지에 이끌려 이라는 책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처음으로 완독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6편의 장편 소설 중 하나로,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물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심리소설이다. 1인칭 시점으로 '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나'만이 아닌 각각의 캐릭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소설로 이끌어 들이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탁월한 심리묘사는 그녀의 명성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통사고로 휠체어 ..

인문/책 2021.09.13

낙태에 대한 단상 -영화 <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 (2020 作)>를 보고

십 대 여학생이 보여주는 낙태 여정: 홀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무덤덤하면서도 섬세하게 연출한다 (7.7/10) 이 영화는 미국에 사는 한 십 대 소녀가 낙태수술을 받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중에서는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에 낙태를 위해 거주지인 펜실베니아가 아니라 뉴욕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 각 주 사이에서도 범죄 인정 유무가 다른 것처럼 낙태법은 논쟁이 끝나지 않는 문제이다. 낙태 자체가 윤리적 딜레마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법적 제재가 단언되기란 어려운 일일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지만 영화를 보고 드는 일련의 단상들을 정리해볼까 한다. 대한민국은 형법 제 27장에서 '낙태의 죄'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 ..

인문/영화 2021.08.29

[書說]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作)

는 1946년에 독일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썼지만 독일어로 되어있습니다. '이미륵' 작가가 어린 시절 어떻게 해서 독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를 담고 있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거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소설의 내용과 작가의 삶이 일치한다고 합니다. 한일합병 전후를 배경으로 하며 당시 상황을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치열한 투쟁 속의 독립운동가나 일제 수탈의 피해자라기보다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리워한 한 순박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당시 대부분의 소시민들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문학적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본은 독일어이고 저는 다림 출판사의 정규화 옮김으로 읽었습니다. 나중에 독일어 공부를 위해 원본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인문/책 2021.08.28

[書說] 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作)

아가멤논의 딸, 책장을 살펴보다가 표지와 '아가멤논'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읽었는데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뛰어난 작가를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작가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알바니아'라는 국가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게는 알바니아에 대한 무지는 다행히 책을 읽는데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았다. 책의 내용이 비단 한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의 앞부분에는 이 책이 쓰였을 당시의 배경과 작가의 상황을 일부 전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줄거리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사회주의 국가에 살아가던 '나'가 5월 1일 노동절 기념 대회장에 초대받아 정해진 시간에 길을 따라 배치된 좌석..

인문/책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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