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여학생이 보여주는 낙태 여정: 홀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무덤덤하면서도 섬세하게 연출한다 (7.7/10)
이 영화는 미국에 사는 한 십 대 소녀가 낙태수술을 받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중에서는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에 낙태를 위해 거주지인 펜실베니아가 아니라 뉴욕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 각 주 사이에서도 범죄 인정 유무가 다른 것처럼 낙태법은 논쟁이 끝나지 않는 문제이다. 낙태 자체가 윤리적 딜레마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법적 제재가 단언되기란 어려운 일일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지만 영화를 보고 드는 일련의 단상들을 정리해볼까 한다.
대한민국은 형법 제 27장에서 '낙태의 죄'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 27장의 제 269조(낙태), 제 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일부 항목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형법 제 269조 1항과 제 270조 1항은 2021년 1월 1일부 법적 효력을 상실하고 낙태만 놓고서는 죄를 따지지 않게 되었다.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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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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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불합치, 2017헌바127, 2019. 4. 11.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출처: 대한민국 형법)
'낙태가 과연 옳은 일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당화 가능한 일인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하다. 나는 낙태에 대해서 옳은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정당한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태아는 엄연히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고,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태아를 죽인다는 사실은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태아의 입장이 아니라 산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가령 성폭력을 당해서 임신을 하게 되었거나 도저히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 된다거나 할 경우에는 낙태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출산을 통해 태아의 죽음 이상의 큰 문제를 산모에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 생각도 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안전한 환경에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산모의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불법 낙태의 위험을 방지하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아이를 낳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낙태가 성행하는 사태는 방지해야 한다. 낙태법이 폐지된다고 해서 태아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9년 낙태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제 269조와 제 270조의 각 1항은 법적 효력을 상실하고 법적 공백으로 남아있다. 입법부는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정당한 법으로 이 법적 공백을 빠르게 메꾸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7년에는 헌법재판소에게 헌법과 합치한다고 판결받았던 낙태법이 2019에 와서야 위헌 판결을 받게 된 경위에서는 여성 인권의 신장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201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투운동'부터 위력에 의한 성추행 문제, 최근 군 내 성폭력까지 보면 시대는 아직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낙태법 폐지 또한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존재'라는 구시대적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자료
엘리자 히트맨. <전혀아니다, 별로아니다, 가끔그렇다, 항상그렇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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