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영화

인간다움이란? -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 비교분석

천사환 2022. 7. 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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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보지 않은 무수한 가능세계를 인간으로 하여금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것, 개인적으로 그것이 sf장르가 아닌가 싶다. sf영화에서 그려내는 미래는 다양하지만, 그 속에 나름의 선악이 존재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돕는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특히 영화가 제공하는 시각적인 자료는 관객들이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한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본격적인 글에 앞서 필자는 인간 사회를 들추어 보고 발전케 하는 하나의 도구로 sf장르가 있음을 역설한다.

 

본고에서는 영화 화면과 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더하여 영화 속 미래의 도시와 인간의 모습을 다룰 예정이다. 이를 위해 두 편의 시리즈, 1982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2017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선택하였다. 덧붙여 <블레이드 러너>는 개봉판이 아니라 final cut을 기준으로 함을 밝혀둔다.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는 필립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하지만 본고에서는 책에 관한 논의를 배제하도록 하겠다. 두 영화는 모두 애매한 설명으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두 영화를 이어서 보면 영화 속에서 흐른 30년이라는 시간이 세계관 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예측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불안정하고 어두운 <블레이드 러너> 세계관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는 레플리컨트라는 존재는 필자로 하여금 이 두 편의 시리즈를 글의 대상으로 선택하도록 이끌었다. 생명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인간인 레플리컨트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레플리컨트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회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모습들은 영화 밖의 관객들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끔 하고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영화에서 표현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본고에서는 레플리컨트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가지는 기회를 갖고, 더하여 그 존재로 말미암은 사회구조 속 파란을 바라보며 영화 속 미래사회가 나아갔던 방향에 대한 고찰을 더하고자 한다.

 

<블레이드 러너 final cut>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타이렐 사가 만든 레플리컨트 넥서스6는 우수한 신체능력과 지능을 바탕으로 우주 식민지 개척 등 인간사회의 발전을 돕지만, 레플리컨트가 반란을 일으킨다. 위험한 그들의 존재는 불법으로 규정되고 그들을 찾아 제거하는 특수 경찰이 블레이드 러너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가 지구로 탈주한 레플리컨트를 쫓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4년이라는 수명을 극복하기 위해 지구로 온 레플리컨트인 로이 베티와 그 일당, 그리고 새로운 레플리컨트인 레이첼, 그들을 상대하는 데커드의 감정선을 잘 표현해내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때문에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각각의 인물에 주목하여 영화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데커드는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블레이드 러너 직을 은퇴한 상태이지만 브라이언 반장의 부탁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데커드는 지구로 탈주한 레플리컨트 중 3명을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로이가 수명이 다해 세상을 떠나 일차적인 임무를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제거 대상인 레이첼과 함께 떠나는 길을 선택한다. 레이첼과 떠나는 결말과 은퇴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는 인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데커드가 임무를 부여받고 먼저 찾아가는 장소는 타이렐 사이다. 타이렐 사의 외부는 사이버틱한 피리미드이고 내부는 그에 맞게 누런 태양빛이 비추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표현된다. 이는 타이렐 사가 세계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타이렐 사에서 데커드는 새로운 레플리컨트 모델인 레이첼과 만나게 된다. 레이첼이 기존의 레플리컨트와 구별되는 점은 기억이다. 기억이 입력된 레이첼은 자신이 레플리컨트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레이첼은 데커드에게 테스트를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점차 알아가지만, 초기에 자신은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등 많은 심리적 혼란을 보여준다. 레이첼이 테스트를 받고 자신의 존재를 깨달으며 타이렐 사에서 도망치는 일련의 과정들을 데커드의 시선에서 간접적으로 전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데커드의 감정에 동화시키고 있다. 이는 레이첼과 데커드의 사랑을 절제미로 전달하며 둘이 함께 떠나는 결말을 이해시킨다.

 

인간으로 대변되는 블레이드 러너와 레플리컨트의 대립 구조로 영화가 진행되지만 확실한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에서 지구로 온 로이, 프리스 등의 레플리컨트는 우주선을 탈취해 사람들을 죽이고 지구로 오면서 수명 극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해버리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영화 배경인 우주 식민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인간들이 각각이 하나의 인격체인 레플리컨트를 인간의 편리에 의해서 함부로 대하며 이용해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레플리컨트를 이용하고자 했던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그들이 인간에 대해 원망의 감정을 가지고 보복하도록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수명이 정해진 채로 평생을 이용당하는 운명을 지닌 그들이 죽음 직전에 지구로 왔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원망으로 비정상적인 감정표출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로이가 타이렐 회장을 만나 그를 죽이는 장면에서 분노와 원망이 잘 드러난다.. 이 장면은 로이의 감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타이렐 회장이 레플리컨트를 생명이 아닌 도구로 여긴 기업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죽음을 앞두고 데커드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죽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을 보여준다. 영화는 감정이라는 표현 수단을 통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전하고 레플리컨트가 인격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타이렐 사의 모토인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는 인간과 레플리컨트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선악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묻고 있다. 더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레플리컨트들과 그들의 생의 욕을 가로막고 이용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어딘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로이가 죽음을 앞두고 데커드를 구해준 후 한 말은 다음과 같다: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자신이 우주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죽음에 대해 말하는 이 장면은 비가 내리는 상황이 감정을 증폭시켜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하다. 사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데커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레플리컨트가 막연히 으로 여겨진다. 조라와 프리스의 죽음으로 그에 대한 회의감을 키워지고 로이의 죽음으로 레플리컨트는 적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다. 레플리컨트의 생명을 타이렐만이 아니라 데커드도 경시하고 있었음을 일깨우게 하고 로이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이 장면은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소멸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이와 입력된 기억으로 혼란한 레이첼의 모습이 대비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신만의 기억감정을 갖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였다.

 

<블레이드 러너>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밤을 무대로 하며 비가 오고 낮에도 스모크가 껴있어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진보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상류층 사람들은 ‘오프월드’라 불리는 쾌적한 환경의 우주 식민지로 이주하고 오염된 지구에는 중하류층의 사람들만 남아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 상황이 행복이란 감정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는 않지만 지구와 우주로 이분되는 주거지의 차이를 오염된 지구와 쾌적한 오프월드로 구체화하면, 단순히 경제의 문제에서 벗어나 환경과 결합된 건강과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중에서 세바스찬의 경우 그가 가지고 있는 병 때문에 오프월드로 가지 못한 것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경제적 형편이 뒤떨어지거나 정신적, 신체적으로 결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고 때문에 어둡게 묘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영화적 상황을 통해 미래의 빈부격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주식민지를 개척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타이렐 사였기에 이런 주거지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

<블레이드 러너 2049>2019년을 배경으로 하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30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다룬다. 타이렐 사는 타이렐 회장의 사망 후 수명이 전해지지 않은 모델인 넥서스8을 출시하지만 그들의 연이은 반란으로 타이렐 사는 파산한다. 후에 월레스 사가 타이렐의 기술을 얻어 인간에게 순종적인 레플리컨트 신모델을 재생산하게 된다. 신모델은 만들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모델과 구별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크게 경찰국, 월레스 사, 구모델을 중심으로 한 반란군 세 가지 세력이 존재한다. 30년 전 도망친 레이첼이 임신하고 출산한 아이를 찾아 레플리컨트의 생식 기술을 얻기 위한 월레스 사와 사회적 혼란을 염려해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경찰국의 대립 구조로 영화가 시작되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 세력에 대해 정확한 선악을 말하기 어렵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레플리컨트인 케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케이는 KD6-3.7라는 제조번호를 가진 레플리컨트로 블레이드 러너이다. 레플리컨트가 블레이드 러너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띄지만,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순종적이라는 점은 전작에 비해 그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넌지시 언급한다. 케이는 태어난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이 태어난 레플리컨트의 기억임을 알게 되고 그에 관한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케이는 이 진실을 찾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각 세력들을 타자의 입장으로 조우하게 되고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인간의 도구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자리 잡으며 죽음을 맞이한다.

 

레플리컨트를 순종적으로 만들어 인간들과 섞여 살게끔 도와주는 것은 기준선 테스트’일 것이다. 기준선 테스트는 전작에서 블레이드 러너들이 레플리컨트를 구별하기 위해 시행했던 테스트를 발전시킨 것이다. 기계에 의해 행해지는 이 테스트는 케이가 임무를 마칠 때마다 받으며, 기준선에 미치지 못하는 레플리컨트는 폐기되는 것으로 보인다. , 레플리컨트는 인간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해도 인간이 원하는 역할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기만 해도 제거당하는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존재를 필요에 의해 이용하고 멋대로 제거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태어난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려는 경찰국장과 생식기술을 얻기 위해 포획하려는 월레스는 이기적인 인간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물들이 각 공기관의 수장, 세계적 기업의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은 올바르지 못한 지배계층이 레플리컨트가 존중받지 못하고 경제적 계층화가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월레스 사의 모습은 타이렐 사와 비슷하게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노란색의 구조물과 일렁이는 노란빛은 마치 황금을 떠올리게 만든다. 월레스의 대사와 갓 나온 레플리컨트의 배를 갈라버리는 행동으로 볼 때, 그가 레플리컨트를 자신이 돈을 벌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작과 후속작 모두 눈동자가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분하는 소재로 여겨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월레스가 눈동자 색을 잃어버린 맹인이라는 점은 그가 상실한 인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서 월레스의 레플리컨트 비서 러브는 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서슴없이 살인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레플리컨트라는 존재가 소속 집단이나 가까운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을 알려준다. 우수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레플리컨트들은 테러 세력 같은 사회적으로 혼란을 주는 조직에 들어가 영향을 받고 이용당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러브가 경찰국에 찾아가 증거를 훔치고 국장을 죽이는 것은 사기업이 공권력에 도전하는 사례로 이미 정상적인 사회 체계가 붕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레플리컨트 외에도 조이라는 프로그램은 눈에 띄는 존재이다. 비록 실체는 가지지 못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조이는 마치 감정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고 주인공 케이와 많은 교류를 한다. 하지만 사실은 이는 입력된 행동이며 대상의 욕망을 이용한 월레스 사의 마케팅이라는 것을 도시의 광고를 통해서 넌지시 알려준다. 또 조이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통제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찰국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수단으로 쓰이고 월레스 사가 위치 추적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상품을 통한 개인적 공간의 침범은 엄연한 국가와 기업의 사생활 침해로 심각한 문제를 갖는다.

 

영화에서 2049년의 모습은 2019년보다 더 진보된 기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도시 이면의 어둠을 더 노출시키고 있다. LA 쓰레기 폐기장과 그곳에 있는 고아원 그리고 방사능 오염으로 빈 도시는 전작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지구의 도시 밖을 보여주고 있다. LA의 광범위한 지역이 쓰레기장으로 사용되고 그곳에는 노숙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한 고아원 원장은 아이들에게 노동을 시키며 아이들을 무슨 상품 팔듯이 소개하는 사실상 노예상으로 전락해 있었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 간에도 도시 안팎의 경제적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 준다. 2049년에 데커드가 머무르는 곳은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장소이다. 카지노나 공연장 등 고급 오락 시설의 모습은 건물 내부의 쓸쓸함을 더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나오는 수많은 쓰레기와 방사능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영화 속의 모습처럼 거대한 쓰레기장과 텅 빈 도시가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두 영화를 함께 보게 되면 타이렐 사와 월레스 사라는 거대 기업의 존재, 자신의 임무에 회의감을 느끼는 주인공, 불공평한 사회구조 등의 유사점을 갖고 있다. 타이렐 사가 생산된 레플리컨트로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당 기술을 독점하는 운영 방식은 월레스 사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두 기업은 기술을 독점하고 견제세력이 없다는 특징 때문에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타이렐과 월레스 두 회장의 모습도 어느 정도 유사점을 가진다. 월레스의 모습이 타이렐보다 더 잔인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사익추구가 우선인 기업가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에 관하여 앞서 월레스가 맹인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타이렐이 로이에 의해 눈알이 눌러져 죽었다는 점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타이렐을 인간성을 상징하는 눈동자를 눌러 로이가 심판했다고 볼 수 있다.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거대기업의 회장이 보여준 모습은 인간성보다 자본주의에 충실한 기업가의 모습이었다. 더하여 월레스 사는 레플리컨트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능동적인 소비주체로 만들어낸다. 케이가 월레스의 제품인 조이를 소비하며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여가를 즐기는 것은 레플리컨트의 소비자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월레스가 만들어낸 생산품이 소비자가 되는 이 체계는 자본주의의 한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독점시장을 강화하여 자사에 부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덧붙여서 영화 속에서는 동서양이 결합한 다인종 사회를 그리고 있는데 세계화에 따른 국가 간 진입 장벽이 낮아진 데 기인했을 것이다.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통합은 타이렐과 같은 독점기업이 영향력을 넓히는 데 유리한 무대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기에 방지했어야 할 정부의 능력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각 주인공인 데커드와 케이는 모두 블레이드 러너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결국 자신의 일에서 돌아서게 된다는 유사점이 있다. 데커드는 인간, 케이는 레플리컨트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인물은 모두 블레이드 러너로서 그 이유는 막론하고 대상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앞서 레플리컨트를 도구로 여기고 이윤을 추구했던 대기업 회장 타이렐과 월레스를 비판했지만, 실상은 평범한 계층인 데커드와 케이도 크게 다르지 않게 자신의 삶을 우선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레플리컨트의 생명에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갖는다. 블레이드 러너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블레이드 러너라는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인간을 지키는 차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레플리컨트를 추적해 죽여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들을 도구로 생각하는 상류층의 가치관이 평민들에게도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본다. 데커드와 케이는 자세한 경위는 다르지만 블레이드 러너 직에서 나오게 된다. 케이의 경우 마침내 인간성을 깨우치고 자신이 죽였어야 할 데커드가 딸과 만나는 것을 도우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지만 데커드의 경우 레이첼과 함께 떠난 후 레플리컨트 반란 세력과 태어난 레플리컨트인 딸의 안위를 위해서 다른 이들의 희생을 만들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인 데커드보다 레플리컨트인 케이가 모순적이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케이가 영화의 마지막에 데커드를 구하기 위해 부상을 입고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의미심장하다.

 

레플리컨트라는 존재는 영화 속 미래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월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인간이 해왔던 많은 일을 대신했을 것이다. 레플리컨트가 우주 개척이나 육체활동을 대신함에 따라 인간은 점차 소외되고 저마다의 개성과 능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또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상류층-중류층-하류층의 구분은 ‘오프월드-지구의 도시-도시 밖이라는 주거 지역의 차이를 포함한 사회 전반적인 차이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레플리컨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긴 또 다른 문제는 생명경시이다. 작중에는 생명공학 기술로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복제가 아닌 창조에 가까운 기술은 생명을 오히려 가볍게 생각하게 만든 것 같다. 레플리컨트를 도구처럼 여기듯이 만들어진 동물들도 생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소유물로 거래된다. 인간이 생명을 만들었다고 그 생명을 앗아갈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착각하고 기술에 대한 믿음으로 자연의 생물도 함부로 대한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든다. 기술은 윤리적인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나아가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다. 비록 영화에서는 실패했지만 생명과 관련해서는 항상 무거운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인간에 대해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본문에서 인간성이라는 단어를 사람의 선한 됨됨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진정 인간적인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영화에서는 그런 의문점들을 레플리컨트라는 존재를 통해 우회적으로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행동을 많이 하지 않을까 예상이 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기에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고 다양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으며, 또 타인을 위하는 마음 덕분에 사회 속의 봉사, 배려가 이루어져 사회적 약자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마음의 균형이다. 개개인의 이타적인 마음이 모여 진정한 인간사회를 이루고 발전시킬 것이다. 덧붙여 인간 외의 생명들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인간 복제, 창조는 많은 영화에서 소재로 다루어지지만 현실에서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윤리성의 문제에서 쉽사리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레플리컨트와 같은 생명은 논외로 하더라도 산업 폐기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여 생태계를 지킬 임무도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열대우림의 파괴와 사막화, 도처에 존재하는 쓰레기 등을 생각하면 인간은 이미 다른 생명을 무겁게 여기고 있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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