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과 러브레터, 현진건, 조선문단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아마 읽어본 적은 없어도 제목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한 여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하는 B사감과 러브레터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 나레이션 같은 3인칭 독백도 있어서 진짜 풍문으로 이야기를 듣는 듯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 이름을 붙이기보다 'C여학교', 'B사감', '첫째 처녀' 등과 같이 실명보다 익명으로 지칭하는 것도 그러한 효과에 한몫하는 것 같다.
B사감은 평소 학생들에게 오는 '러브레터'와 '면회'를 싫어하는 노처녀이다. 하지만 밤 중 남몰래 러브레터를 읽고 혼자 괴상한 역할극을 행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은 B사감이라는 다소 모순되고 위선적인 인간을 해부하면서 연민과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사실 B사감은 누구보다 사랑이 고팠던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에게는 '러브레터'와 '면회' 나아가 남자 자체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질투와 열등감에서 나온 심술이라고 본다. 마흔이 되도록 시집을 못 가 노처녀로 늙어가는 입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남자랑 노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배알 꼴리겠는가. 아무튼 남녀교제가 활발한 학생들의 그런 모습은 자유연애가 확산되던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하면서 B사감을 통해 여성에게 가해진 보수적인 시선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이 1925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연애나 결혼에 대한 시선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고 B사감을 보면 그동안 노처녀로 살면서 집에서 구박을 받는다거나 사회의 눈초리가 신경쓰였다거나 했을 수도 있다. 이제 그런 상황들이 B사감에게 트라우마를 만들어 고팠던 사랑이 뒤틀리고 그녀를 심술궂게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필자는 그녀의 괴상한 역할극으로 말미암아 그냥 추측해본 것뿐이다. 소설은 추리물과 같은 느낌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이런저런 추측을 가능케 만들고 있는 것 같다.